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미국에서는 산업화 속도가 빨라졌다. 수공업이 자취를 감추고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 시대로 넘어갔다. 기업들은 경영 전략, 생산 관리, 재무를 망라해 새로운 차원의 지식과 지혜를 가진 리더가 절실해졌다. ‘경영 과학’이란 용어도 이 무렵 등장했다. 이런 배경에서 1908년 하버드대에서 세계 최초 경영학 석사(MBA)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교수 15명과 학생 80명으로 출발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115년 동안 교육의 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99년부터 집계한 세계 MBA 순위에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불참한 2021년을 빼고는 매년 5위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8만9000여 졸업생이 구축한 동문 네트워크도 막강하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을 이끄는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앤디 재시 최고경영자(CEO),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을 비롯해 세상을 움직이는 다양한 기업과 조직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동문이 이끌고 있다.
디지털 혁명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세상이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가장 앞서 나가는 ‘경영사관학교’라고 하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어떤 리더를 길러내고 있을까. WEEKLY BIZ가 스리칸트 다타르(Srikant Datar·70) 학장을 화상으로 만나 오늘날 비즈니스 리더의 자질과 디지털 시대 생존법에 대해 물었다.
인도 출신인 다타르 학장은 뭄바이대와 인도경영대학원(IIMA)을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경제학 석사,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진에 합류한 뒤 다양한 보직을 거쳐 2021년 학장에 취임했다. 그는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랙스먼 내러시먼 스타벅스 CEO 등과 함께 인도에서 교육받고 미국에서 경력을 꽃피운 대표적 리더로 꼽힌다.
“적극적으로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라”
다타르 학장은 2020년 10월 학장으로 지명됐을 때 ‘경청 투어’를 떠난 경험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당시 그는 재학생은 물론이고 졸업생, 교수진, 직원까지 1000명 가까이 만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이를 메모해 자연어 처리 기술로 분석하고 공통 주제를 끄집어냈다. 다타르 학장은 “새로운 디지털 도구 의존도가 계속 높아지겠지만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은 여전히 모든 리더의 필수적 의무”라고 말했다.
-적극적 경청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요.
“적극적 경청은 자신과는 다른 관점을 이해하려는 열망을 갖고 대화하는 일입니다. 적극적으로 경청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배울 수 없으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이끌 수 없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차이가 크고 의견이 다양한 시대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하죠. 어떻게 해야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적극적 경청을 필요로 합니다.”
-단순히 많이 들으면 되나요.
“물론 일상적인 만남에서도 말하는 것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해야 한다는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 경청은 단순한 듣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인사이트를 얻으려는 의도로 이뤄지고 대화가 끝났다고 해서 멈추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기업이 직면한 실제 사례를 놓고 토론하는 ‘케이스 스터디’를 1924년 주요 교육 방식으로 확립했다. 이후 세계 각지 MBA 과정에서 보편화됐다. 다타르 학장은 “케이스 스터디를 하면 자연스럽게 적극적 경청을 배우게 되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된다”고 했다. 학생들은 가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미디어 기업, 자금 조달 문제에 직면한 광산 업체 등을 비롯해 2년간 500개 넘는 ‘케이스 스터디’에 참여하게 된다.
1920년대 하버드 경영대학원 케이스 스터디 자료. 신발 공장 근로자들이 작업대를 습관적으로 일찍 떠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양자택일 피하고 손실 회피 심리 극복하라”
적극적 경청을 먼저 제시한 다타르 학장은 ‘동시에 생각하기(and thinking·앤드 싱킹)’와 ‘용기 있게 행동하기(act courageously)’도 리더에게 필요한 세 가지 자질로 꼽았다.
-’앤드 싱킹’이란 어떤 개념인지요.
“CEO는 갖가지 선택 갈림길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직원 요구와 주주 수익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까요?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해야 할까요, 아니면 통제해야 할까요? 우리가 내리는 선택 대부분이 이런 이분법에서 시작합니다. 동시에 생각하기란 이런 양자택일 사고를 거부하고 문제를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그리고’를 중시하는 사고를 통해 직원과 주주 모두를 지원하는 방법을 찾고, 권한 부여를 장려하는 통제를 설계하라는 것이죠.”
한 가지를 선택하면서 반대편에 있는 가치를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입체적으로 생각하라는 얘기다. 다타르 학장은 앤드 싱킹의 힘을 보여주는 리더로 인도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를 꼽았다. 라이벌 회사와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고, 첨단 기술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영향력을 경계하고, 최고 수준의 인력을 고용하면서도 이들이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가는 기업 문화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실제 나델라 CEO는 2014년 취임 직후 애플 아이패드용 오피스 제품을 출시하는 등 개방성을 높였고, 경쟁사인 세일즈포스와 파트너십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기술이 화두가 된 이후엔 “AI 기회를 극대화하면서도 이 기술이 가져올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인재에 대해선 “모든 것을 배우려는 사람이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잘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용기 있게 행동하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이유로 기다리지 말라는 겁니다. 리더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사치를 누릴 수 없습니다. 70%의 확신만 있어도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손실 회피 심리를 극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손실의 고통에 예민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죠. 반면 용기 있는 리더는 (결정을 내릴 때) 반사적으로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도록 노력합니다.”
다타르 학장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의사 결정 방법을 예시로 들었다. 베이조스는 2016년 주주 서한에서 ‘고품질이지만 동시에 빠른 의사 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의사 결정이 나중에 되돌릴 수 있는 양방향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원하는 정보의 70%만 갖고 있어도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의견에 대한 동의를 받는 데 집착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봐, 우리가 의견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나와 함께 도박을 하지 않겠나”라고 묻고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의미다.
“AI가 아닌 ‘AI가 줄 기회’를 이해하라”
다타르 학장은 초기 연구에선 비용 관리, 전략 실행, 지배구조 등에 초점을 맞추다 최근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창의적 문제 해결), 인공지능(AI)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AI가 각광받는 시대를 맞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도 근년에 데이터 과학과 머신러닝, AI 수업을 추가했다. 챗GPT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을 활용한 교육 방식도 개발 중이다. 모두가 AI를 말하는 시대를 맞아 다타르 학장은 “리더는 AI 기술 자체가 아닌 AI 기술이 줄 기회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가 비즈니스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까요.
“AI는 이미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규모로 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 등장으로 분석하는 방식부터 고객 서비스, 공급망 관리 방식, 조직이 생각하는 방식까지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 졸업생이자 온라인 교육 플랫폼 ‘칸 아카데미’ 설립자인 살만 칸은 모든 학생에게 맞춤형 과외를 제공할 수 있는 AI의 잠재력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수만 개인 과외를 받을 수 있었던 세상을 넘어 교육 기회가 확대된 거죠.”
-이런 첨단 기술에 대한 지식이 필수가 될까요.
“반드시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AI의 세계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한 가지를 배운다 하더라도 몇 달 후엔 전문성을 잃게 될 겁니다. 대신 이런 첨단 기술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 이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술 중심적 마인드로 생각하기(technologically minded)’는 분명 리더십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입니다.”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AI의 영향력은 분명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될 것입니다. 판단력이나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고, 리더들은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기술을 배포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또 비즈니스 리더들은 커리어 전반에 걸쳐 오늘날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디지털 도구들에 의존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것은 여전히 필수적인 인간적 기술이자 모든 리더의 필수 의무로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