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
우리는 모범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불완전하고 미숙하기 때문에 어딘가 허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남의 발을 밟거나, 어깨를 부딪치거나, 엘리베이터나 전철을 먼저 타려 하다가 내리는 사람과 얽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말없이 지나치다 간혹 사과를 요구하면 언쟁을 벌이는 광경도 보게 된다. 물론 혼잡한 곳에서는 사과할 새가 없는 경우도 있다. 가끔 공중도덕 문란이나 공공기물 훼손 등 이기적 행동이나 해외에서 국위를 실추시키는 추태에도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큰 피해를 주거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을 때는 미안해하며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사소한 것이면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무심하게 지나친다. 자기 행동이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르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비오는 날에 우산을 잘못 들어 남에게 빗물이 튀거나 옷을 적셔도 흔히 무심히 넘기는 경우다. 이웃 간 불화의 소지가 되는 층간 소음도 그렇다. 아이들이 뛰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억제하기 어려우니, 항의하는 이웃이 편협하고 포용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는 거친 말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는 것과 같은 잘못을 했을 때 부모가 사과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족 간에는 무엇이든 다 용서가 되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린 자녀에게도 사과해야 자녀도 따르지 않겠는가?
빨리 지나가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과 스치며 전화기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가버리거나, 무심코 빌딩 출입문을 열고 나가다 뒤따라오는 사람이 문에 부딪친 것을 뒤늦게 알면서도 그대로 간 적도 있다. 머뭇거리다 시기를 놓친 것이다.
사과는 진심을 담은 것이라야 하다.책임 회피를 위해 주변 상황이나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것은 가식적인 느낌이 강하고 더 불쾌하게 만든다. 정치인 중에는 사과는커녕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거나 오히려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파렴치한 모습도 자주 보인다. 자신의 무고함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잘못을 분명히 드러내는 경우도 있는데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건부 사과도 진정한 사과로 볼 수는 없다.
사과하면 여러모로 손해를 보니 어지간하면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자존심이 저하된다고 여기거나 무시당하거나 약자로 보이기 싫다는 것이다. 특히 증거나 증인이 없을 때는 자신의 언행을 전면 부정하고 그런 사실이 없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적반하장 식으로 상대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미안해서 또는 창피해서 사과하지 않거나 대면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사과하려는 마음은 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마치 어딘가에 숨어버리는 어린애와 같은 면을 보이는 것인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는 방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과를 제대로 하면 어지간한 잘못도 이해하고 지나칠 수 있다. 사과를 자주 한다고 자신이 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거나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작은 실수라도 사과를 하면 짜증스럽거나 기분이 상하지 않고 흐믓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겸손한 행동은 저자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갈등 해소를 촉진하고, 남을 이해하려는 긍정적 사고에도 도움이 되며 비슷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피해자의 심장 박동수를 줄이고 혈압을 내려 건강에도 이롭다고 하니, 사과야말로 최선의 선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