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독종’이었다. 조명탑의 불이 꺼지고, 관중과 선수들이 모두 빠져나가고서도 그는 구장을 나서지 않았다. 라커룸의 커다란 거울 앞에 속옷만 입은 채 섰다. 그리고 무사가 칼을 들듯 배트를 쥐고는 몇 시간이고, 허공을 벴다. ‘타격 달인’, ‘타격 천재’라는 찬사를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장효조를 최고의 타자로 일으킨 건 피나는 노력이었다. \타격천재\ 장효조. 그가 눈을 감았습니다. 55세라는 나이가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교야구의 열기와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장효조는 \전설\이었습니다. 크기 않은 체구에서 매번 안타를 뽑아내는 그를 보며 \안타 제조기\라 불렀지요. 야구라는 한 분야의 \천재\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대단했습니다. 통산 타율이 무려 3할3푼1리였습니다. 그에 이어 양준혁이 많이 낮은 3할1푼6리로 2위인 것만 보아도 장효조의 존재감을 알 수 있지요. 타격왕 4회, 3년 연속 타격왕, 출루율 1위 6회도 그의 기록입니다. 야구계에는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 \"장효조는 배트를 거꾸로 들어도 3할 타자이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장효조는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사실은 지독한 \연습벌레\였다고 합니다. 화려했던 전설 뒤에는 땀이 있었던게지요. 경기가 끝난 구장 라커룸에서도, 새벽 숙소에서도 그는 무사가 칼을 들듯이 배트를 쥐고 몇 시간이고 허공을 벴다고 합니다. 중2때 아버지를 여의고 야구를 위해 개인사도, 친구도 버리고 연습에 몰두했다고 하지요. \"체구가 작아 언제 선수생활이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다. 결국, 나를 키우고 살린 8할은 훈련이었다.\" 필자가 전해준 장효조의 말입니다. \독종\이라는 말을 들으며 한 분야에서 \전설\을 쓰고 간 장효조 선수를 보며 \노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t*@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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